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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문헌 목록 〉23. 23世 〉11. <요재공>송파재기(松坡齋記)휘항순(諱恒順)
1. 문헌 목록 〉23. 23世 〉13. <부정공>중강공휘동주묘갈명(重崗公諱東宙墓碣銘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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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2.<요재공>휴수배열부유인진주강씨사적비문(休壽配烈婦孺人晋州姜氏事蹟碑文)
(요재공후)23世휴수(休壽)配 열부유인진주강씨사적비문(烈婦孺人晋州姜氏事蹟碑文) 太和에 造物主가 宇宙 間에 모든 萬物을 創造하고 그中에 오즉 人間을 그 靈長이라 하였으니 이는 곧 사람이란 禮義廉耻와 倫理綱常이였기 때문이다. 그러나 輓近社會風潮는 物質文明의 思想이 極度로 澎湃하여서 倫理道德은 땅에 떨어져 父不父子의 樣相은 뜻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長太息을 禁치 못하고 있는 이즈음 어떠한 사람이고 그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. 이에 대한 夫人이 있어 烈行이 顯殊하였으니 그는 곧 孺人 晋州 姜氏로서 求禮고을 光義面 炯波亭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淑儀非夙하던바 芳年 十六에 南原郡 松洞面 趙氏門에 出嫁하였으니 그 夫君 休壽는 世貝玉川이요 麗朝檢校將軍 諱璋이 그 鼻祖로서 全南 寶城으로부터 南原으로 寓居한 以孝贈嘉善諱始綱號雲松公의 八世孫이다. 早失怙悻하고 家道極難하니 妹氏家인 王峙面植亭마을 어느 집에 居入하면서 뗏집 두어 間을 마련 아내 姜氏와 君을 낳게 되었다. 그러나 집을 지은 舊債에 시달리고 아내와 두 아들 세 食口를 扶養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워 어느 날 忽然 집을 떠나고 말았으니 이것이 곧 一場悲劇의 序幕이었던 것이다. 柔弱한 夫人은 두 어린이를 데리고 風朝雨夕 날품팔이로 三旬九食의 連名을 하고 사는 모습은 目不忍見이였었다. 歲月은 흘러 三年이 지난 어느 날 麗水 方面 行商을 하는 사람의 말이 그 夫君이 突山에서 死亡하였다는 것을 들었으나 어쩐지 미덥지 않고 다만 돌아오기를 苦待하던 中 큰아들 斗勲君이 또한 行方不明이 되었던 것이다. 오직 둘째 萬勲君을 데리고 한숨과 눈물로 八年의 星霜이 흘렀으나 夫君의 消息 永久頓絶케 되어 더 참을 수 없는 夫人은 單身으로 門을 나서 山 설고 물 설은 南쪽을 向하여 麗水를 거쳐 突山에 到着 며칠을 彷徨타가 드디어 權氏 某집을 찾아 물으니 果然 그 夫君이 거기서 死亡 뒷山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確認하였다. 天地가 暗淡할 뿐 쑥대 우거진 무덤 앞에 엎드려 痛哭하고 標木한 㐰을 꽂고 그대로 돌아왔었다. 그 一年 後從媳扱國三氏와 같이 突山에 가서 遺骸를 返葬하려는 데 배에서 骸骨을 실어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큰 竹箱에 責苔로 假包裝하여 故鄉으로 돌아와 蚊龍山 기슭 甲原에 고히 安葬하고 萬勲君을 길러서 全州 李門에 娶妻 그 夫妻 또한 孝誠이 至極하면서 孫文奎仁奎로서 오늘의 家門을 重創하였으니 이는 오로지 夫人의 貞烈所致로서 이 事蹟이 龍城誌 烈女篇에 收錄이 되었고 享年 六十二歲요 墓所는 上葛峙村前寅原이다. 嘉尚할진 저이 夫人의 卓行高節은 昏衢의 秉燭이요 婦道의 龜鑑에 足하다. 앞에 悠悠히 흐른 蓼川水와 뒤에 높이 솟은 蚊龍山 저 물과 이 山이 마르고 닳도록 夫人의 冥福과 耒孫의 興隆이 洋洋無窮할지어다. 檀君 四千三百九年 三月 日 完山 李萬器 撰 玉川 趙光萬 書 不肖子 萬勲 泣血奉建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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